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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 - 최고는 아니지만 충분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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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 - 최고는 아니지만 충분한.

탓치 2009. 11. 6. 12:30


극장에서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 2007>를 보며 그 웅장함에, 그 아름다움에, 그 아기자기함에 세 번 놀란 기억은 꼭 어제 일 같은데,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나있다. 2년 전, 파릇파릇했던 고등학생 시절 끄적여두었던 영화 리뷰를 옮겨 본다.



[ 1 ] 영화보러 출동!!

기말고사가 겨우 일주일 남은 이때, 시험 전에 언제나 그랬듯 사총사는 외출을 감행합니다. 외출할 때마다 서면의 맛집이란 맛집은 모두 돌아다니고, 보고싶은 영화가 있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나갔다오는 저와 친구들은 시험 전 주에 나가는 걸 무슨 숙명처럼 생각하고 있죠.

이번에는 벼르고 벼르던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를 보고 왔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땐 언제나 등장인물, 예고편 등을 꼼꼼히 챙겨봤던 저였지만, 이번에는 음악에 관련된 영화라는 사실 빼고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습니다. 또한 눈이 급속도로 나빠진 이 때, 안경을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택시 안에서 깨닫는 불상사가 있었으니, 영화를 보기엔 최악의 조건이었죠.

운이 좋게도, (다른 친구들에겐 안됐게도,) August Rush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 40분 전에 표를 예매했음에도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게되었습니다. 담 크게도 팝콘 L과 콜라 L 사이즈를 사들고 들어간 저는 한껏 고개를 젖히고 이어질 영화에 기대합니다.

[ 2 ] 어거스트 러쉬와 향수

영화는 고아 소년을 화자 삼아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톤이 느린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짤랑거리는 풍경소리와, 이를 다섯 음계로 표현한 주멜로디에 빠져들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들판의 중심에 선 아이는 음악을 듣죠.

저도 모르게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떠오르더군요. 사실 이 둘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우선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떨어져 고아원에 맡겨졌습니다. 그루누이는 죽음, 에반은 운명이 그 이유가 되겠네요.

또한 특출난 재능을 한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오감으로 표현되는 색채, 맛, 향기, 소리, 감촉을 느끼는 능력 중 그루누이는 향기에 대한, 에반은 소리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닙니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노골적입니다. 그루누이는 뒤에서 날아오는 귤의 냄새를 맡고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에반은 처음 보는 악기의 소리만 듣고 연주해 버리죠. 향수의 경우엔 냄새라는 무형을 좇는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냄새의 근원을 따라 움직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August Rush의 경우에는 에반이 듣는 자연의 소리를 적절히 편집하여 들려줄 수 있었죠. 그런 면에서 August Rush가 좀더 표현에 유리했다고 봅니다.

[ 3 ] 내가 보는 영화의 화법, 교차점

August Rush는 두 개의 교차점을 사용합니다. 현재와 과거는 풍경 소리와 하늘을 교점으로 엇갈리고, 가슴 저릿한 락과 웅장하고 단아한 클래식은 가느다란 선(기타, 첼로)을 교점삼아 흐릅니다.

사실 xx YEARS AGO, 나 yy YEARS LATER 류의 시간 변화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Sleepless in Sicago 등 많은 영화에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시간변화를 지루하게 설명하는 대신, 관객을 믿고 멋대로 옮겨버리는 어거스트 러쉬의 화법은 인상적이더군요. 아이가 바라보는 창밖의 달에서 11년 전 부모가 처음 만났을 때의 옥상 장면으로 바뀌고, 풍경 소리를 배경으로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방식을 취합니다.

락과 클래식 사이 연결의 자연스러움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아버지 루이스의 락을 기본 선율로 잡고, 첼로 선율이 간간히 어우러지는 느낌은 한 음악을 연주하는 듯, 조화롭습니다. 음악을 통한 소통을 설정으로 삼은 영화이니만큼, 사랑하는 두 사람과의 관계를 음악으로 표현할 의무가 있었겠죠. August Rush는 성공한거죠?.

[ 4 ] 로빈 윌리엄스의 등장!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로빈 윌리엄스의 등장은 쇼크, 그 자체였습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바이센테니얼 맨, 패치 아담스 등의 영화에서 언제나 후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길거리 고아들의 우두머리 역을 맡습니다. 에반의 넘치는 음악적 재능을 이해하고, 열정을 불어넣어주지만, 후에는 돈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그의 모습은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평소 익숙했던 캐릭터가 아닌 까닭도 있겠죠.

열심히 랩소디 공연 준비를 하는 에반의 앞에 나타나 아버지라 우기며 훔쳐가듯 데러가고, 떠나려는 에반을 향해 '네 부모는 죽었다.'라는 독설을 서슴치 않는 악한 사람. 영화나 소설은 현실감 넘치는 거짓말이란 말을 생각해볼 때, 그의 행동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줍니다.

[ 5 ] 현대의 모차르트, August Rush

위저드(로빈 윌리엄스)에게 어거스트 러쉬라는 애칭을 받기 전, 에반은 재능을 드러낼 기회가 있어야했죠.

에반은 극장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기타를 타악기처럼 두드리며 흥겨운 리듬을 탑니다. 기타를 타악기처럼 사용하는 첫 설정은 설득적인데요, 코드 짚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기타를 연주했다면 영화에 흠집이 났을 겁니다. 몇 가지 음을 '두드려서' 알아내고, 그 음으로 선율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천재의 탄생을 알립니다. 향수에서 그루누이가 처음 맡은 향수를 조합해내는 신기를 보인 장면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 6 ] 깔끔한 엔딩

사실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산파극이 벌어졌다면 실망했을 겁니다. 분명 만날텐데,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만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영화도 처음이었고, 음악영화답게 음악으로 마무리짓는 방법은 탁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엔딩을 좋게 평가하시더군요.

[ 7 ] 너무 잦게 나왔던 우연들

가족들 간의 음악적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이니만큼, 서로 '피로 이끌린다는' 설정은 삽입 가능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우연성 만남들은 영화의 장치로 넘길만큼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루이스와 에반이 만나 길거리 기타 연주를 하는 장면은 그나마 이해가 갑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향수에 젖어 다시 뉴욕을 찾은 기타리스트이자 라커인 사람이, 뛰어난 실력의 아이를 보고 호감을 갖음은 당연하죠. 또한 그 장소가 루이스에게는 사랑의 기억이 담긴 곳이며, 에반에게는 처음 길거리 공연을 보았던 장소라는 점에서 수긍이 갑니다.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은 갑자기 일어난 루이스의 변심입니다. 사실 에반이 고아원을 떠나올 때에 맞추어 부모님이 위독하시고, 자신의 아이에 대한 비밀을 듣는 라일라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루이스는 회사에 잘 다니다가 11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지인들을 만나게 되고, 여자 친구가 떠나는, 엄청난 속도의 변화를 겪습니다. 덩달아 회사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날아가죠.

차라리 '그 날 밤' 이후 정확히 10년이 지난 날, 루이스가 한 눈에 반한 상대를 그리워하다 못해 음악을 다시 시작하고, 아버지가 '이제 말해줄 때가 된건가'라는 심정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는 설정이 설득적으로 보입니다. 영화 속 우연은 우연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사실같은 거짓말이죠. 치밀한 사건간의 개연성을 통해 필연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살짝 아쉬움이 남네요.

[ 8 ] 최고는 아니지만 꼭 봐야할 영화!

천재 소년, 잦은 우연, 피의 이끌림 등, 잘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전개들이 많습니다. 아버지를 뒤로하고 아들만 찾아다니는 라일라의 행동이나, 악보의 기본적인 작성 방법도 모르면서 곡을 써내려가는 등의 비약도 보입니다. 영화의 화법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은 매우 뛰어나지만 스토리면에서 살짝 비틀거리는 듯 하군요.

하.지.만. 만일 2007년,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후회하실거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꼭, 보세요.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덧1> 주인공 라일라와 루이스는 미션임파서블 3에서 각각 죽은 여요원, 헬리콥터 조종사를 담당했었답니다.
덧2> 구혜선과 타블로가 출연해요!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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