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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버슨이야기 - Good Bye, Allen Iverson.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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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버슨이야기 - Good Bye, Allen Iverson.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6. 18:09
'The Answer', Allen Iverson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아서 도무지 무슨 내용으로 시작해야될지 막막하기만합니다..

Iverson의 어린시절은 불우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그를 낳아 혼자서 키웠고, 당연히 어린 아이버슨은 주변의 흑인들과 지내며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Football선수이기도 했던 그는 농구를 선택했고, Georgetown대학에 입학하고, 최고의 대학선수가 되었습니다. 포인트가드로도 작은 키에 전천후 득점기계였으며, 넘치는 Stylish함에 무수한 사람들이 180도 채 안되는 슈팅가드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장하자면(아니, 실제라고해도 과하지않죠..) 세상의 수많은 키작은 사람들을 농구코트로 불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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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adelphia 76ers는 96년 드래프트 1픽을 손에 쥐고는 기뻐했습니다. 구단주는 즉시 인터뷰를 하면서
"우린 Iverson을 뽑을 수 있게 됐어요!"라며 환호하였습니다. 명실상부 최고의 대학선수였던 그를 Pick함에 있어서 그의 작은 신장과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스타일에 대한 우려 따위는 이미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버슨은 역대 최단신 1픽이자, 그 유명한 매직 존슨 이후로 최초의 가드 출신 1st pick으로 필라델피아에 입단했습니다.

http://blog.naver.com/bubwel2003?Redirect=Log&logNo=100050755874




첫경기부터 30득점을 기록한 그는 연이어 엄청난 득점행진을 기록하고, The Greatest Defender이기도 한 Jordan을 크로스오버로 제쳐두고 점퍼를 성공시키며, 모든 농구인들이 그처럼 Crossover하고자 열심히 공을 튀기게 하였습니다.

루키시즌에 시카고전에서 처음 40득점을 기록한 아이버슨은 엄청난 고득점행진으로, 클리블랜드전 50득점을 포함해 5경기 연속 40+경기를 선보입니다. 이미 아이버슨은 Great Level Scorer였으며, 시즌평균 23.5점을 기록하였고, 당연히 Rookie of the Year는 그의 차지였습니다.


97-98시즌 이후 조던이 은퇴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엄연히 리그최고의 득점기계가 된 Iverson에게 쏠렸고, 그는 약팀으로 분류되던 필라델피아를 연일 고득점과 함께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역사적인 시즌인 00-01 시즌에서, 아이버슨은 평균31.1점으로 득점왕, 2.5스틸로 스틸왕, 그리고 시즌MVP까지 따내며 56승으로 동부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수비왕센터 Dikembe Mutombo를 중심으로 명감독 Larry Brown이 완성해낸 완벽한 수비팀에서 Iverson은 48분 내내 오로지 상대팀의 림에 폭격을 가하면 되었고, 무수한 득점기록들을 쏟아내었습니다.









한편 서부에서는 Lakers가 리그 1위 Spurs마저 4-0으로 스윕하고 파이널에 진출했을 때, 사람들은 드디어 무패우승이 현실화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동부는 7차전까지가는 혈전중이었고, 지친 그들은 도저히 Kobe&Shaq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7차전을 두번이나 겪으며 올라온 파이널 1차전, 상대는 MDE 샤킬오닐과 최고수준의 가드로 부상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레이커스였습니다. 그들은 파이널까지 11승 무패로 올라왔으며, 따라서 지칠대로 지친 필라델피아 팀이 그들을 상대로 1승이라도 따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팀으로도 손꼽히는 레이커스를 원정에서 상대하는 1차전에서, 아이버슨은 48점을 쓸어담으며 승전보를 올립니다. 경기가 끝나고, 리그의 모든 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십여군데에 부상을 달고 7경기나 더 뛰고 올라온(Iverson은 1경기 결장했습니다만) 식서스가 괴물팀 레이커스를 상대로 원정에서 승리를 거뒀다는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식서스는 4연패를 당하며 결국 레이커스에게 우승컵을 빼앗기고 말지만, 이 키작은 슈팅가드는 리그의 팬들에게 Greatness와 Passion의 정의를 각인시켜주었습니다.



 01시즌 올스타에서 아이버슨은 동부의 신장 열세에도 불구하고 (상대팀에 케빈가넷, 크리스웨버, 팀던컨 등 장신선수가 많았습니다) 역전승을 거둔 후에,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깁니다. Iverson이라는 '인간'은 농구실력뿐만 아니라 인생이 한 편의 Drama였으며, 어디서나 어떤 모습으로나 '간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말솜씨도 대단하지요.


시즌이 끝나고도 그 Greatness는 어디 가지 않아서, 이후에도 아이버슨은 2회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였습니다.하지만 팀은 점점 약체화되어갔고, 야심차게 영입한 Chris Webber도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점프슈팅에만 주력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06-07 시즌에, 아이버슨은 결단을 내리고, 팀에 트레이드 요청을 하여 Denver의 포인트가드 Andre Miller와 트레이드됩니다. 덴버에는 이미 슈퍼스타가 될 자질을 보이던 Carmelo Anthony가 있었고, 둘은 리그 최고의 다이나믹 듀오를 결성하여 매일밤 상대 수비진을 폭격하며 60,70점씩 합작해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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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시즌과 이듬해 07-08시즌에(팀에 23년만에 50승을 안겨주면서) 둘은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나, 1라운드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리그 최고의 선수를 다투던 팀 던컨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이 콘로우 듀오의 2라운드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08년도 오프시즌에, 덴버와 디트로이트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천시 빌럽스와 아이버슨을 트레이드합니다. 하지만 이미 Rodney Stuckey를 팀의 중심으로 낙점한 피스톤스에서 아이버슨의 자리는 좁았고, 그의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17점대의 득점과 1개의 위닝샷으로 초라하게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그에게 남은건 떨어진 슈퍼스타의 자존심과 평판, 그리고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람들의 인식들이었습니다. 팀과의 계약은 끝났고, 이제 아이버슨은 새로운 팀을 찾아나서야 했습니다.



결정을 섣불리 내리지 못하고 있던 아이버슨에게 Offer한 팀은 바로 멤피스였습니다. 구단주 하이즐리는 O.J Mayo, Rudy Gay, Marc Gasol, Mike Conley Jr. 등의 유망주가 넘치는 팀 Grizzlies에 신입생 Jack Randolph와 Iverson이 팀을 이끌어주며, 락커룸 리더로써 유망주의 성장을 돕는 한편, 아이버슨의 넘치는 득점력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버슨은 자신의 부족한 출장시간에 툴툴거리며 불평하였고, 결국 시즌도중 팀을 이탈하고 마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조금 더 참고 기다렸다면, 30분 가량의 출전시간을 받으며 자신의 득점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미 땅에 떨어진 아이버슨의 위신과 자존심만 내세운다는 세간의 평가는 그의 새로운 팀을 찾아나서려는 노력을 가볍게 무시해버렸고, 아이버슨은 결국 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아이버슨의 13년 nba생활을 간략하게나마 Storytelling형식으로 적은 것입니다. 이 짧고 조악한 글로 MVP 아이버슨의 위대함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애시당초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결코 팀 케미스트리에 '커다란'악영향을 끼치는 선수가 아니며, 자신이 볼만 가지고 팀 플레이에는 관심이 없는 스탯전문 선수라는 비평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가라는 말을 하고싶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선수였으며, 그 것을 수십군데의 부상을 달고 매 경기 40분이상 출장하면서 평균 27점(현역 1위,역대 3위)와 2만4천점이 넘는 통산득점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아이버슨을 제 마음속의 최고의 선수로 생각해본 적은 없고, 가장 팬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저의 Favorite Player는 오히려 그의 Rival이었던 Kobe Bryant와 Tracy McGrady, Baron Davis 등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Allen Iverson, His Greatness는 그에 대해서 얕은 수준의 '앎'과 '들은 것', 단촐하게 '본 것'만 가지고 우리가 평가하고 자시고 할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며,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기억들과 너무나도 Amazing했던 13년 동안의 활약들은 세계의 농구팬들에게 농구라는 스포츠와 최고의 리그인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성질의 그것입니다.




96-97 NBA Rookie of the Year
NBA All Rookie First Team (96-97)
00-01 NBA Regular Season MVP
NBA All Star Game MVP 2회 (00-01, 04-05)

NBA First Team 3회 (98-99, 00-01, 04-05)
NBA Second Team 3회 (99-00, 01-02, 02-03)
NBA Third Team 1회 (05-06)

98-99 Season NBA Scoring Leader (26.8 ppg)
00-01 Season NBA Scoring Leader (31.1 ppg)
01-02 Season NBA Scoring Leader (31.4 ppg)
04-05 Season NBA Scoring Leader (30.7 ppg)

00-01 Season NBA Steal Leader (2.5 spg)
01-02 Season NBA Steal Leader (2.8 spg)
02-03 Season NBA Steal Leader (2.7 spg)

정규시즌 평균출전시간 1위 7회

통산 24020득점(현역3위, 통산17위)
통산평균 27.0득점 (현역1위, 통산3위)
통산 플레이오프 평균 29.3득점 (현역1위, 통산2위)
통산평균 2.2스틸 (현역1위, 통산6위)
통산 플레이오프 평균 2.07스틸 (현역2위, 통산7위)


ESPN이 발표한 명예의전당 등록확률 1.000

http://cafe.naver.com/mykim.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8251




P.S 사랑하는 가족과의 '일반인'으로써 아이버슨의 삶 역시도 응원하겠습니다. Go Iv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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