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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누가 도전이 아름답다 했던가.

건강한 탓치 2010. 7. 4. 18:07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선택에 직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돈이든, 진로든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선택이 쌓이고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거겠죠.

저는 아직 꺾이지 않은 20대,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시옷 받침 들어가는 스물'셋' '넷' 다'섯 '여'섯'이면 이십대로써 꺾인 거라네요.) 하지만 나름 후회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저도 선택 앞에서 고심한 기억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대학의 선택, 멀게는 중학교 선택에 있어 집 근처의 남녀공학을 갈지 학군이 좋다는 멀리의 남학교를 갈지 등등. 선택의 대상의 경중을 떠나, 선택이란 것은 가슴뛰고 즐거우면서, 두렵습니다.

뱀다리: 요즘 10대들과 20대들은 부모님의 입김이 너무 센 나머지 선택하는 기준도, 방법도, 심지어는 의지도 없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27%라고 하죠.

오늘은 선택할 권리를 빼앗겨버린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제롬 모로우(Jerome)이며, 직업은 흠, 우주 항공사 정도 되겠네요.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빼앗겨버린 사람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요. 그들은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사는 것에 행복을 느낄까요? 이에 대한 대답으로 기꺼이 'No'를 외친 제롬, 그리고 빈센트는 영화 <가타카(Gattaca), 1997>의 주인공이자, 최후의 자연 잉태자 세대입니다.

1. 가타카의 세계. 유전자 정보가 나의 A부터 Z인 세상.

영화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배경이 디스토피아의 극단에 있는 영화에는 <이퀼리브리엄>이나 <왓치맨>,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가 있습니다. 특히 <가타카>는 <이퀼리브리엄>의 배경와 매우 흡사합니다.

우선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회색빛깔이 감도는 색채가 비슷합니다. <이퀼리브리엄>에서는 '감정'이 인류의 발전에 해가 되는 요소라는 이유로 감정을 유발할 수 없게끔 무채색으로 도시를 '꾸밉니다'. 아무리 약으로 억제하고 있다곤 해도,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낸 예술가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을 막을 수가 없을테니 말이죠.

또한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가 비슷합니다. <가타카>도, <이퀼리브리엄>도, <브이 포 벤데타>도, 또한 흔히 액션 영화로만 알려져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개인은 국가에게 철저히 감시 당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정보를 빼앗김으로써, 감정을 빼앗김으로써, 체제에 굴복함으로써, 그리고 각막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감시당하는 것에 순응하죠.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 등장하는 Big brother가 두 눈 부릅뜨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목적은 사회의 평화와 안정이지만, 이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권력자들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타카>의 빈센트와 <이퀼리브리엄>의 존 프레스턴, <브이 포 벤데타>의 'V', 그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 앤더튼이 그들 나름대로의 정의를 위해 투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이 영화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구요. 하지만 실제로 이런 미래가 닥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제 다시 <가타카> 얘기로 돌아가보죠.

자연 잉태자란 2010년 현재 지극히 일반적인 (그리고 대부분의) 잉태 방법인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미래의 어느날인 만큼 - 너무나 놀랍지만 미래에는 왠지 있을법한 -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이 됩니다. 키스를 하고 난 뒤 입술에 남아있는 타액으로 유전자 감식을 하고, 음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자리에 남아있던 머리카락으로 손쉽게 정보를 알아내서 유포시킬 수 있는, 말하자면 너무나 삭막한 세상이죠. 심지어는 전기자동차의 윙~하는 소리마저 차갑게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2. 꿈을 파는 사람들.

얼마 전 완결이 난 네이버 만화, <연옥님이 보고계서>는 작지만 큰 질문은 하나 던져 주고 갔습니다.

누구나 꿈을 좇아야 하는가?

꿈이 없는데 그걸 찾겠다고 방황만하다 소중한 시간만 허비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연옥님이 보고계셔억수씨, 단행본 살거에요. 말없이 퍼온 거 좀 봐주셔요.


이렇듯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 혹은 '꿈꾸지 않는 자는 현실에 안주하는 어리석은 자이다'란 명제는 사실 매우 이기적입니다. 한국은 꿈이 있는 자를 꿈이 없는 자에 대해 우월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것이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제일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일전에 언급했듯이, 사소한 감정의 기복을 정신병으로 규정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기준으로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꿈이 없는 자, 도전하지 않는 자라며 매도하는 시각은 방황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방황하게끔 만듭니다.

요즘은 꿈을 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꿈조차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어 더욱 이런 일이 많은 것 같네요. 을 위해선 참고서도 사야하고, 을 위해선 자격증도 따야하고, 을 위해선 레프팅도 해야하고, 을 위해선 밴드도 해야하고, 을 위해선 공모전에도 나가야하고, 을 위해선 '20대에, 30대에, 40대에 꼭 해야할 OO가지'라는 이름의 책도 사서 봐야합니다. 으엑, 힘든 세상이에요.


3.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말은 참일까?

<가타카>의 빈센트는 열악한 유전자는 모두 타고난 채 태어납니다. 태어나자마자 채집한 혈액 샘플은 빈센트가 서른 이전에 죽을 확률, 병으로 고생할 확률, 눈이 안좋을 확률 등이 매우 높다고 말합니다. 충격에 휩싸인 그의 부모님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아이는 자라면서 빈센트보다 키도 더 크고, 체력도 뛰어나며, 눈도 더 좋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합니다. 빈센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남동생과 비교당하면서 자라게 되죠. 남자 형제들은 경쟁하며 자라기 마련인데, 아마 스트레스가 대단했을 겁니다.

그런데 용케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란 빈센트는 우주비행사를 향한 꿈을 키워나갑니다. 두꺼운 천문학 책을 달달 외우고,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에 오를 거란 희망을 놓지 않죠. 하지만 유전자가 뛰어난 경쟁자들에 비해 그는 너무나 왜소한 존재입니다.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면접자들의 가능성이 아닌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는 데 급급하죠. 법적으로 유전자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다곤 하나,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이런 좋은 정보를 놓칠리가 없잖아요?

빈센트의 꿈에 위한 노력은 너무나 처절합니다. 도전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한 남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은 신분을 사고, 뼈를 잘라 이어붙이고, 매일 몸의 털을 깎아내고, 철저한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을 숨겨야 하는 길입니다. 과연 이러한 길이 아름다운가요? 전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도전이 처절하게만 보였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그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맞서야 한다는 슬픈 현실. 그리고 이보다 더 슬픈 것은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만 또다른 '빈센트'입니다.


4.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꿈도, 도전도 다 필요없습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나 자신이 된다 함은, 후회 없이, 부끄럼 없이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발판 삼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 하나하나를 굳센 마음으로 밟아갈 수 있다면, 조금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무책임한 질문으로 글의 끝을 맺습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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